[노컷뉴스]국제식품규격위원회(CAC)의 코덱스(codex)에 따르면 음식물의 세슘 기준치는 1000베크렐로 우리보다 열 배나 높다. 미국의 음식물 세슘 기준치는 우리보다 무려 12배가 높은 1200베크렐이다. 이들 기준치에 비하면 우리나라의 세슘 기준치는 상당히 엄격해 보인다. 이만하면 일본산 수입식품을 마음놓고 사 먹어도 되지 않을까.
아직은 어려운 것 같다. 몇 가지 이유가 있다. 검사 대상 방사능이 세슘과 요오드에 한정되어 있다는 점, 기준치가 우리 안전을 제대로 보장해 주지 못한다는 점, 그리고 방사능 피폭 중 음식을 통한 내부피폭이 가장 큰 악영향을 준다는 점 등이 그것이다. 이들 문제를 하나하나 살펴보자.
원전사고가 발생하면 200여가지의 인공 방사능 물질이 발생한다. 하지만 측정 기술과 시간 등의 문제로 이들을 모두 측정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그래서 다른 방사능 물질에 비해 측정하기 쉽고 양도 비교적 많은 세슘과 요오드를 측정한다. 일본산 수입식품에서 방사능이 기준치 이상으로 검출되지 않았으니 '적합'하다며 마냥 안심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미국에서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미국국립과학아카데미의 2006년 보고서(BEIR Ⅶ)는 피폭량과 암 발생이 비례한다고 보고하고 있다. 방사능에 의한 암 발생에는 역치(문턱값)도 존재하지 않는다. 역치는, 어떤 그래프가 원점을 지나지 않고 엑스(X)축에서 출발하는 경우, 그래프가 출발하는 엑스축 위의 점이다. 역치가 없다는 것은, 방사능이 아무리 미량이라도 암 발생 확률을 높인다는 것을 의미한다.
방사능에는 안전 기준치라는 게 없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탈핵 전도사인 김익중 동국대 의대 교수는 방사능 '기준치'를 '안전 기준치'가 아니라 '관리 기준치'로 규정한다. 그에 따르면 방사능에는 안전 기준치란 게 없다. 의학적인 근거에 바탕을 두고 확실한 안전을 지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정부가 현실적으로 '관리'해 나갈 수 있는 수준에서 정해진 기준치일 뿐이라는 말이다. 암 발생 위험과 피폭량은 비례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환기하자.
방사능 기준치가 '관리 기준치'이니 국가나 그때그때의 상황에 따라 수시로 바뀌는 것은 당연하다. 우리나라도 세슘 기준치가 370베크렐이었다가 후쿠시마 방사능 오염수에 대한 불안감으로 100베크렐로 강화되었다. 연간 피폭량 기준치는 1밀리시버트(mSv : 방사능 물질에 의한 신체의 충격량, 곧 피폭량을 세는 단위. 연간 단위를 기준으로 하며 'mSv/y'로 표시함)다.
일본은 후쿠시마 핵사고 이전에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세슘 기준치가 370베크렐이었다. 이후 500베크렐로 조정되었다가 지금은 100베크렐을 기준으로 삼고 있다. 연간 피폭량 기준치는 후쿠시마 핵사고 후 20밀리시버트로 상향 조정되었다. 과거와 똑같이 1밀리시버트를 기준치로 적용할 경우 일본 국민 전체를 피신시켜야 하는 초유의 상황에 처하게 될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김 교수는 피폭량 기준치를 '정부의 책임 한도'를 결정하는 기준으로 규정한다.
방사능 기준치가 의학적인 측면을 고려한 안전 기준치가 아니라 관리 기준치일 뿐이라는 점은 일본 원전노동자들의 피폭 기준 현황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일본 원전노동자들의 피폭 기준은 후쿠시마 핵사고 시점을 전후로 100밀리시버트에서 250밀리시버트로 2.5배 이상 올랐다. 원전노동자들이 특별히 피폭에 강한 체질을 갖고 있어서였겠는가. 연간 1밀리시버트 기준치를 가지고서는 핵사고 현장에서 사고 처리 업무를 수행할 수 없기 때문에 조정되었을 뿐이다.
기준치 문제는 음식물의 경우에 더욱 특별한 중요성을 갖는다. 2006년, 우크라이나 정부는 20년 전인 1986년의 체르노빌 사고(옛 소련 시절) 때 발생한 방사성 물질에 의한 우크라이나 국민의 피폭 경로를 발표한 바 있다.
이 발표에 따르면, 대부분의 국민들이 사는 지역, 즉 토양오염이 적은 지역에서의 피폭 경로는 외부피폭이 5~20퍼센트, 호흡을 통한 내부피폭이 0.1퍼센트, 물을 통한 내부피폭이 2퍼센트 정도였다. 그런데 음식을 통한 내부피폭은 80~95퍼센트로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음식물 피폭의 영향이 절대적으로 크고 위험하다는 말이다.
현재 우리나라가 음식물의 세슘 기준치로 정해 놓은 100베크렐은 어느 정도의 의미를 가질까. 작년(2013년) 8월, 일본 정부는 후쿠시마 핵사고 현장의 오염수 문제가 논란이 되자 후쿠시마 원전 앞 항구 안의 바닷물 오염도를 측정한 자료를 발표한 바 있다. 이 자료에 따르면, 후쿠시마 핵발전소 앞에 있는 바닷물의 세슘 수치는 최저 3베크렐에서 최대 62베크렐로 측정되었다. 우리나라의 기준치 100베크렐은, 후쿠시마 앞바다의 물보다 더 많은 세슘에 오염된 음식을 먹어도 된다는 말과 같다. 이런 사실을 알고도 현재의 세슘 기준치 100베크렐을 순순히 인정해 주는 국민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3년간 일본산 수산물 원산지 표시 위반 건수는 총 201건
더 큰 문제가 있다. 방사능에 취약한 아이들이 학교 급식을 통해 오염된 일본산 수입식품을 섭취할 우려가 그것이다. 방사능 피폭에 의한 암 발생은 남성보다 여성이, 어른보다 어린이가 훨씬 더 민감하다. 1세 미만의 유아는 30세의 성인보다 20배 정도 더 방사능에 민감하다고 평가되고 있다. 그래서 <후쿠시마 Q&A>를 쓴 일본의 반핵운동가 고이데 히로아키씨는 "노인들이 후쿠시마 농산물을 사 먹어주자"라는 극단적인(?)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작년(2013년) 9월 29일 교육부가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김춘진 의원(민주당)에게 제출한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2011년 3월부터 2013년 8월까지 전국 초·중·고교에서 급식으로 사용된 일본산 수산물이 4,327㎏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됐다.(<탈핵신문> 2013년 10월 15일 자 기사 '후쿠시마 사고 후, 일본산 수산물 4327㎏ 학교 급식 사용') 원산지 허위표시 등의 문제를 고려하면 이보다 훨씬 많은 일본산 수산물이 학교급식 재료로 사용되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일본산 식품류는 지금도 꾸준히 수입되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 자료에 따르면, 2014년 1월 1일부터 2월 20일까지 일본산 가공식품은 2548건에 5347톤이 수입되었다. 방사능과 관련하여 국민들의 관심이 많은 수산물은 총 553건에 1759톤이 수입되었다. 농산물(8건, 40톤)과 축산물(34건, 20톤)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은 양이다.
정부는 이들 일본산 수산물의 원산지 둔갑을 막기 위해 원산지 특별단속이나 유통이력제 대상 확대 등의 조치도 취하고 있다. 그런데 실효성이 그다지 크지는 않은 것 같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김성주 의원(민주당)이 밝힌 자료에 따르면, 2011년부터 2013년 9월까지 최근 3년간 일본산 수산물의 원산지 표시 위반 건수는 총 201건에 달했다. 허위표시가 83건, 미표시는 118건이었다. 위반 건수는 횟집과 시장, 마트의 순서로 많았다.
이런 문제 때문에 일부 지역에서는 지자체나 교육청이 주도하여 학교급식에 일본산 수입식품 사용을 원천 차단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기도 하다. 작년 9월 13일 서울시의회가 본회의에서 가결한 '서울특별시교육청 방사능으로부터 안전한 식재료 공급에 관한 조례안'이 대표적이다. 조례 제정까지는 아니더라도 기자회견이나 특별선언 등을 통해 학교급식의 안전성을 지키려는 노력을 보이고 있는 곳도 많다.
권위 있는 국제 보고서나 전세계의 예방의학 교과서는 암이나 유전병 등이 피폭량과 정비례한다고 기술한다. 암이나 유전병에 관한 한 방사능 피폭이 없어야 안전하다는 게 의학적인 진실이다. 일본산 수입식품류가 기준치 이하라서 안전하다는 말은 국민의 안전 책임을 맡고 있는 정부가 해서는 안 될 소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