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전국 대부분의 대학들이 학생들의 개인정보를 제3자에게 제공하면서 이를 공지해야 하는 규정을 지키지 않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자신의 정보가 타인에게 언제, 어떻게, 왜 제공되는지 알아야 할 권리를 위해 만들어진 법이 대학에서는 사실상 무용지물인 셈이다. 특히 일부 대학에서는 이 같은 공지 의무 규정조차 모르고 있어 개인정보 보호 의식을 높이기 위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2일 세계일보 취재팀이 전국 20개 대학(서울 시내 대학 10곳, 지방거점국립대학 10곳)의 개인정보 제3자 제공 사실 공지 여부를 조사한 결과 제대로 공지를 하고 있는 대학은 4곳에 불과했다. 나머지 16개 대학 중 아예 12곳은 공지를 하고 있지 않았고, 4개 대학은 규정에 어긋난 형식으로 공지하고 있었다.
현행 개인정보보호법 18조 2항을 보면 공공기관은 ▲정보주체로부터 별도의 동의를 받은 경우 ▲다른 법률에 특별한 규정이 있는 경우 ▲범죄의 수사와 공소의 제기 및 유지를 위해 필요한 경우 등 9가지 경우에 개인정보를 제3자에게 제공할 수 있다. 9가지 경우에 해당하지 않으면 개인정보를 제공할 수 없고, 동의를 받거나 수사에 필요한 경우를 제외한 7가지 상황에서는 제공 사실을 공지해야 한다.
또 같은 법 18조 4항에는 ‘공공기관은 개인정보를 목적 외의 용도로 이용하거나 이를 제3자에게 제공하는 경우에는 관보 또는 인터넷 홈페이지 등에 게재하여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같은 법 시행규칙 2조에서는 공지 내용을 ▲제공 날짜 ▲제공 법적 근거 ▲제공 목적 ▲제공 항목으로 정해놓았다.
대학이 개인정보를 제3자에게 제공하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서울시내 A대학은 홈페이지 ‘개인정보공시’ 게시판을 통해 학생들의 개인정보를 지난 1, 2월에만 각각 9번, 6번 제3자에게 제공했다. 제공한 기관도 지방병무청과 법원, 세무서, 광역자치단체 등 다양하다. 이 대학 관계자는 “생각보다 많은 기관에서 제공 요청이 온다”고 말했다.
개인정보 제공 사실을 공지하지 않으면 자신의 정보가 제3자에게 넘어갔다는 사실을 알 수 없기 때문에 대학 측이 공지 의무를 지키는 것은 중요하다.
임채호 카이스트 교수(정보보호대학원)는 “개인정보가 어떻게 활용되는지 알린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데, 개인정보 담당자들은 개인정보 유출 방지만 중요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각 대학들은 공지를 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공지 의무를 알지 못했다거나 실무자의 실수라는 군색한 변명을 하고 있다.
한 지방거점국립대 관계자는 “업무를 맡은 지 얼마 안 돼 깊이 있는 것을 알지 못한다”며 “현재 업체에 의뢰해 개인정보 영향평가를 받고 있는데, 평가가 나오면 결과에 따라 정리하겠다”고 말했다.
서울의 한 사립대 관계자는 “개인정보보호법 시행 초기다 보니 아직 법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며 “개인정보에 대해 전문화된 담당자가 배정돼야 하는데 정보시스템이나 보안을 담당하는 사람들이 맡는 경우가 많다. 법 전문가라기보다는 기술 전문가들”이라고 털어놨다.
교육부의 한 관계자는 “교육을 계속 하고 있지만 개인정보 담당자들이 1년 단위로 바뀌다 보니 (규정 숙지가) 쉽지 않다”며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하는 개인정보 일제점검에서 중점적으로 살펴보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