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섬 노예 부리는 전라디언들, 클라스(Class)가 다르네요.” “리조트 붕괴? 흉노 후손 개쌍도는 우리 민족 아님.”
최근 인터넷에 올라온 ‘염전 노예’ ‘경주 리조트 붕괴’ 기사들에 달린 댓글이다. 요즘 온라인 뉴스에서 이런 댓글을 보는 것은 어렵지 않다. 기사에 특정 지역이 살짝만 언급되면, 기다렸다는 듯 지역을 비하하는 신조어가 우수수 쏟아진다. 인터넷이 지역 감정의 전장으로 변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정복 대구대 국문과 교수(48·사진)는 1999년부터 인터넷에 도는 지역 차별 신조어들을 연구해왔다. 그는 최근 <한국 사회의 차별 언어>(소통)란 책에서 누리꾼의 지역차별 언어를 진단했다. ‘브레이크 없는 질주’ 같다는 게 6개월간 인터넷·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면밀하게 보아온 그의 총평이다.
“5·18 희생자를 비하하는 ‘홍어택배’란 말이 있었잖아요. 이런 종류는 가장 심한 비하라 할 수 있죠. 절대 넘어서는 안되는 선인데… 우리나라가 얼마나 더 거친 사회가 될지 걱정이 됐습니다.”
그는 책에서 인터넷의 각종 지역차별 언어를 소개하고 맥락을 분석했다. 기존에 알려진 ‘전라디언’ ‘전라좀비’(시위하는 이들을 ‘좀비’에 비유) ‘개쌍도’ ‘흉노’(신라의 선조가 흉노족 후손이라며 경상도를 비하) 등은 물론 ‘고담대구’ ‘라쿤광주’ ‘갱스오브부산’ 등의 신조어 사례도 소개했다.
최근 만들어지는 지역 차별 언어에는 젊은층의 문화가 강하게 반영돼 있다. ‘고담대구’는 대구에서 범죄가 많이 일어난다며 영화 <배트맨> 속 ‘고담시티’를 빗댄 말이고, ‘라쿤광주’는 좀비영화 <레지던트 이블> 속 도시 이름을 빌린 말이다. 그는 “일부 누리꾼은 이를 개성있는 단어라며 좋아하지만, 그들 역시 어느 순간 이 단어들을 부정적 맥락으로 사용할 수 있다”면서 “아이들이 재미로 차별 언어에 물들어가는데 기성세대가 그걸 방치하는 것은 문제”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15년 동안 지역 차별 신조어들을 연구했지만, 최근처럼 지역 갈등이 과열된 적은 없었다”고 말했다. 대통령 선거를 두 차례 거치며 인터넷이 가장 중요한 정치적인 도구로 변질됐기 때문이다.
이 교수는 “조사해보니 지역 차별 언어를 사용하는 경우는 특정 정치인 본인보다 그 지지자들일 경우가 많았다”면서 “지역 차별 언어로 공격하기 시작하면 해당 지역의 모든 주민들이 그 싸움에 편승하게 된다. 이것은 국민들을 편안하게 하는 정치, 하나로 묶어 주는 정치 방식이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이 교수는 또 정치적인 언어 싸움이 청소년들에게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은 더 큰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젊은이들이 사회에 처음 들어오자마자 편을 나누고 공격하려는 문화에 들어서면 안될 것”이라며 “사회적으로 차별 언어를 자제하는 분위기를 만들고, 학교교육에서 언어로 생기는 사회적 문제들을 가르치는 등 대책을 찾아야 할 것”이라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