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오전 백악관처럼 생긴 미국 버지니아주 주도 리치먼드의 의사당에는 며느리 손을 잡은 80대 할머니를 비롯해 한복을 곱게 입은 중년 한국계 이민자들이 곳곳에 눈에 띄었다. 400여명의 한국계 미국인들은 의사당 방청석을 꽉 메웠고, 자리가 모자라 회의 장면을 생중계하는 대기실에까지 들어찼다.
이날 의회에서는 20여개 안건이 예정돼 있었지만 동해 병기 교과서 법안이 이들의 관심사였다.
퇴직하는 버지니아공대 총장 찰스 스티거가 단상에 나와 의원들의 축하를 받았다. 그는 한국계 미국인 학생 조승희씨에 의해 33명이 숨진 2007년 총격사건의 비극을 거치면서 총장직을 끝까지 수행한 것을 인정받았다. 이 대목에서 한인들은 별로 말이 없었다.
이어 법안 표결이 시작됐다. 다른 모든 법안들이 토론 없이 일사천리로 처리됐지만 마지막으로 미뤄진 동해 병기 법안은 의원 6명이 찬반 논쟁을 벌였다. 버지니아 주의회의 유일한 한국계인 마크 킴 의원은 자신의 부모가 일제강점기 때 창씨개명과 일본어 사용을 강요당한 사례를 거론하며 "일본해라고 표기된 교과서가 내게는 일본의 침략을 상기시킨다. 지나간 일들에 붙잡혀 있는 것과 억압을 기억하자는 것은 다르다"고 말했다. 이에 조니 조아누 의원은 그리스 이민자 집안 출신으로, 조부가 터키와의 전쟁에 참전했지만 자신은 더 이상 '콘스탄티노플'이라는 그리스 명칭보다 현재 통용되는 터키의 '이스탄불'로 부르고 있다며 법안에 반대했다. 그는 "역사에서 잘못된 것은 아주 많지만 그것은 과거일 뿐"이라며 "적대감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의원은 이 법이 통과되면 의회가 교과서 제작사에 지침을 주는 나쁜 선례가 돼 앞으로 교과서 수정 요구를 더 많이 받게 될 것이라며 반대 의사를 밝혔다. 팽팽한 토론과 달리 표결 결과는 찬성 81 대 반대 15로 압도적이었다. 100명의 의원들은 15만명의 버지니아 한인 유권자들의 표가 갖는 힘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의사당에 온 한인들은 대부분 머리가 희끗희끗한 60~80대였다. 한 의원의 반대 취지 발언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해 박수를 치기도 하는 등 영어에 완전히 익숙지 않은 사람들도 있었으며, 수십년 미국 생활 중에 의사당이라고는 처음 와본다는 사람도 많았다. 일본 나가사키에서 태어나 7살 때 해방을 맞은 임춘봉씨(74)는 "미국 이민 생활 34년의 고단함을 잊게 해준 경사"라고 말했다. 허정혜씨(76)는 "1984년에 낯선 땅에 이민 와서 자식들을 키우면서 나 자신은 정말 고생을 많이 했는데, 오늘처럼 기쁜 날이 없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마크 김 의원은 기자회견에서 "한인 여러분들은 비로소 진정한 버지니아 주민이 됐다. 오늘 이곳에서 여러분들의 목소리가 들렸고, 이제부터 교통·교육·보건 등 생활과 밀접한 문제들을 많이 제기하기 바란다. 유권자 등록을 하고 정치인들을 만나 우리 파워를 계속해서 보여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미국에 온 지 수십년 동안 미국 사회의 주변적 지위에 머무르며 정치에 무관심하고 생업에만 몰두했던 한인 이민자들은 처음으로 입법기관을 움직여 자신의 뜻을 관철시켜가고 있다는 자신감에 들떠 있었고, 더구나 그것이 어린 시절 겪었던 일본 제국주의의 유산을 상대로 한 싸움이었다는 점에 더 고양돼 있었다.
< 리치먼드 | 손제민 특파원 [email protected] >
이날 의회에서는 20여개 안건이 예정돼 있었지만 동해 병기 교과서 법안이 이들의 관심사였다.
퇴직하는 버지니아공대 총장 찰스 스티거가 단상에 나와 의원들의 축하를 받았다. 그는 한국계 미국인 학생 조승희씨에 의해 33명이 숨진 2007년 총격사건의 비극을 거치면서 총장직을 끝까지 수행한 것을 인정받았다. 이 대목에서 한인들은 별로 말이 없었다.
기립 박수미국 버지니아주 하원의원들이 6일 리치먼드 주의회에서 버지니아주 공립학교 교과서에 동해와 일본해를 병기하는 법안을 가결시킨 뒤 박수를 치고 있다. 이날 통과한 법안은 주지사가 서명하면 발효된다. 리치먼드 | 손제민 특파원 |
의사당에 온 한인들은 대부분 머리가 희끗희끗한 60~80대였다. 한 의원의 반대 취지 발언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해 박수를 치기도 하는 등 영어에 완전히 익숙지 않은 사람들도 있었으며, 수십년 미국 생활 중에 의사당이라고는 처음 와본다는 사람도 많았다. 일본 나가사키에서 태어나 7살 때 해방을 맞은 임춘봉씨(74)는 "미국 이민 생활 34년의 고단함을 잊게 해준 경사"라고 말했다. 허정혜씨(76)는 "1984년에 낯선 땅에 이민 와서 자식들을 키우면서 나 자신은 정말 고생을 많이 했는데, 오늘처럼 기쁜 날이 없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마크 김 의원은 기자회견에서 "한인 여러분들은 비로소 진정한 버지니아 주민이 됐다. 오늘 이곳에서 여러분들의 목소리가 들렸고, 이제부터 교통·교육·보건 등 생활과 밀접한 문제들을 많이 제기하기 바란다. 유권자 등록을 하고 정치인들을 만나 우리 파워를 계속해서 보여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미국에 온 지 수십년 동안 미국 사회의 주변적 지위에 머무르며 정치에 무관심하고 생업에만 몰두했던 한인 이민자들은 처음으로 입법기관을 움직여 자신의 뜻을 관철시켜가고 있다는 자신감에 들떠 있었고, 더구나 그것이 어린 시절 겪었던 일본 제국주의의 유산을 상대로 한 싸움이었다는 점에 더 고양돼 있었다.
< 리치먼드 | 손제민 특파원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