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프레시안]'철도 민영화 방안'으로 비판받고 있는 박근혜 정부의 '철도 산업 발전 방안'에서 한국 철도가 나아갈 방향으로 언급된 '독일식 모델'은 이상적인 모델일까? 정부가 '장밋빛 전망'으로 포장한 철도 산업 발전 방안의 부정적 측면들이 독일을 비롯한 유럽 철도 전문가들의 발제를 통해 지적됐다.
<프레시안>, <한겨레> 등이 후원하고 전국철도노조와 민주노총 공공운수연맹 등이 주최해 28일 국회 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열린 '한국 철도의 미래를 위한 국제 심포지엄'에서 영국, 독일, 스웨덴, 노르웨이 등의 철도 전문가들은 자국의 철도 민영화 사례들을 한국이 따라가서는 안 된다고 입을 모았다.
국토교통부 철도산업위원회가 지난 6월 26일 가결한 '철도 산업 발전 방안'을 통해서 국토교통부는 △코레일이 아닌 별도의 운영 회사(코레일 30% 출자와 공적 자금의 재무적 투자 70%를 통해 설립하는 주식회사)를 설립해 수서발 KTX를 운영하고 △현재의 코레일(한국철도공사)을 분할해 여객 운송 기능을 담당하는 지주회사와 물류, 차량 정비, 유지·보수 등의 부문별 자회사로 나누며 △2015년 이후 개통하는 4개의 신규 일반 노선과 기존 적자 노선의 운영을 민간 사업자에게 개방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국토부는 이 같은 계획이 '독일철도지주회사(DB, '데베'라고 발음하며 독일의 코레일 격인 '도이체반'을 말한다) 산하에 4개의 자회사 및 6개의 손자회사를 두도록' 한 독일식 철도 발전 방안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국토부는 독일식 철도 발전 방안이 독일에서 마치 무리 없이 실행되고 있는 것처럼 설명했다. 신광호 철도운영과장이 6월 19일 국회에서 열린 철도 민영화 토론회에서 발표한 발제문에는 독일 철도 모델에 대한 설명이 들어 있다. 이 발제문 28페이지에는 독일 철도가 현재 3단계 구조 개혁을 거쳤고, 2008년부터 현재까지 "운영 경쟁 및 운송 부문 효율화를 추진"하고 있는 중이라고 설명돼 있다.
정부의 설명을 들으면 독일은 이미 구조 개혁에 성공했고 '효율화' 추진 절차를 순조롭게 밟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정부는 독일이 2008년부터 현재까지 추진 중인 '효율화'가 어떻게 됐는지, 그 상황은 전혀 설명하지 않고 있다. 정부의 말대로 독일은 성공적인 '효율화'의 열매를 맛보고 있을까?
'철도 사유화' 시도 실패한 독일…한국 정부는 알까?
결론부터 말하면 독일은 실패했다. 오히려 독일 정부의 '효율화' 시도는 정치·사회적으로 '철도 사유화'라는 커다란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독일의 철도 전문가인 베르너 레 박사는 이날 발제문을 통해 2006년부터 2008년까지의 독일 '철도 사유화 논쟁'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정부가 결코 설명하지 않고 있는 것들이다.
"(독일에서) 2006년에 시작됐던 사유화 논쟁을 짚어야 한다. 당시 투자 은행에 의해서 철도 사유화를 포함해 공공 부문 민영화와 관련된 몇 가지 (민영화) 옵션이 개발됐다. 이 가운데 특히 철도 사유화 부분에 대해 강력한 비판이 제기됐다. 결국 (여론의 반대로) 투자 은행의 민영화 안에서 철도 부분은 배제가 됐다. 그 이후에 화물, 운송과 같은 경우 4분의 1 정도의 지분을 민간에 매각하겠다는 계획이 유력한 옵션으로 떠올랐지만 결국 이것도 성사되지 않았다.
그러자 한 가지, 필수적으로 (주식 매각을) 집행하겠다고 정부가 의지를 보인 것이 화물 부분이었다. 이것을 독자적으로 매각하는 것이었다. 이 지분을 팔아서 벌어들일 금액을 (DB) 회사의 3년치 수익으로 한 것을 나는 이해할 수 없었는데, 이 부분 때문에 (사유화에 반대했던) 좌파 사회민주당과 (집권 내각 사이의 철도 사유화 관련) 협상이 지연됐다. 그러다 결국 2008년에 세계 금융 위기 때문에 사유화 시도가 아예 폐기됐다.
(…) 그러던 중 한 연구 결과가 발표되는데, (당시 정부가 추진하는 방식의 사유화가 추진돼) 13개 도시 간 철도가 민영화될 경우, 결국 운행이 중단될 것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대도시, 인구 밀집 지역에 모든 서비스가 집중될 것이라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 정리하면, 2006년부터 2008년까지 (투자 은행과 정부에 의해) 사유화 사전 정지 작업이 이뤄졌는데, 궁극적 목적은 (자회사 등의) 주식을 매각하려 한 것이다. 결국 실패로 돌아가 성사되지 않았다."
레 박사는 이어서 "최근 독일의 마인츠 역에서 장거리 열차가 무정차하는 사태가 일어났다. 인력 감축 등으로 배차원이 없어서 마인츠 역에 장거리 열차가 서지 못했던 것으로 드러났고, 이 사건이 독일 전역에 주요하게 보도되면서 '민영화 때문에 이런 사건이 일어난 것'이라는 교훈과 메시지가 독일 대중에게 각인이 됐다. 정부 각료도 이것이 민영화의 좋지 않은 결과라고 인정했다"고 말했다. 독일 정부 차원에서 민영화의 폐해를 인정했다는 말이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독일의 현 상황에 대한 제대로 된 인식도 없이 독일 철도가 2008년부터 현재까지 "운영 경쟁 및 운송 부문 효율화"를 "추진" 중인 것처럼 설명했다. 레 박사는 "철도 지분을 팔려는 '사유화' 시도는 적어도 현재까지 상황을 보면 법적으로 완전히 폐기됐다"고 강조했다.
영국의 '참담한 민영화 실패 사례'를 한국은 따라갈 것인가?
그렇다면 한국 정부가 내놓은 안은 어떤가. 철도노조와 시민단체 등은 국토부의 안이 오히려 영국식 프랜차이즈 방식에 가깝다는 지적을 하고 있다. 단적인 예로 독일 모델은 주식 발행이 불가능한 공기업 체제에서 민간 입찰 등이 이뤄지는데, 수서발 KTX의 경우는 주식을 발행하고 팔 수 있는 민간 개방 철도 회사가 별도로 코레일과 경쟁하는 모양새다.
이 같은 방식에서 철도 인프라는 국가가 관리하되 전체 철도 노선이나 철도 산업을 잘게 쪼개 수십 개 민간 회사들에 운영권을 주는 '프랜차이즈' 방식으로 갈 위험성이 높아 보인다는 지적도 나온다.
영국식 프랜차이즈 방식이 참담하게 실패한 사례는 철도 전문 저널리스트인 크리스천 월마 전 <인디펜던트> 기자가 잘 설명했다. 철도 노선은 물론 철도 선로까지 팔아버린 영국의 끔찍한 '실패'에 대한 이야기다. 결국 영국 정부는 민영화의 심각성을 깨닫고 일부 재국유화에 나서게 되지만, 문제는 여전한 상황이다.
"일종의 '영업 면허권'을 주는 프랜차이즈는 최저 입찰가를 제시한 입찰자가 항상 낙찰된다. 서비스와 차량을 (프랜차이즈 회사가) 추가로 도입하거나 구매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계약이 종료될 무렵 비현실적인 입찰이 진행되기도 한다. 단기 프랜차이즈를 통한 철도의 경쟁은 의미가 없어졌다. 지나치게 많은 분할을 했고, 계약 절차가 붕괴했다. 정부 역할은 불분명하고, 철도 산업은 불안정성을 더욱 크게 갖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