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넥센의 ‘깃발 응원’은 왜 8회에 멈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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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회 3206
  • 2016.10.19 09:08
준PO서 대형깃발 흔든 넥센 알바 15명
대부분 20대~30대 취업준비생
넥센이 계약한 이벤트업체서
인력업체 통해 근로계약서 없이 고용

9시간에 5만원 받아 ‘시급 5555원’
인력업체 “최저임금 지키지 못했다”
취재 들어가자 8회초부터 응원 중단
넥센 “오늘도 위반할 것 같아 멈춰”

 
17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넥센과 엘지(LG)의 준플레이오프 4차전. 넥센쪽 내야에서 5개의 대형 깃발이 휘날리고 있다.사진 권승록 기자 rock@hani.co.kr
17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넥센과 엘지(LG)의 준플레이오프 4차전. 넥센쪽 내야에서 5개의 대형 깃발이 휘날리고 있다.사진 권승록 기자 [email protected]

대학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하고 있는 졸업반 김아무개(27)씨는 17일 중간고사를 마치고 부리나케 넥센과 엘지(LG)의 2016 포스트시즌 준플레이오프 4차전이 열린 서울 잠실야구장으로 내달렸다.  

넥센 로고가 새겨진 대형 깃발을 흔드는 아르바이트를 하기 위해서다.

김씨가 야구장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1시30분이었다. 넥센에서 제공한 보라색 티셔츠를 입고 포스트시즌 출입증을 발급받은 뒤 응원용품을 날랐다.

오후 4시께 햄버거와 콜라로 간단히 저녁을 먹고 배정된 지역으로 흩어져 매니저의 지시에 맞춰 깃발을 흔드는 연습을 했다.

이날 넥센은 외야에선 10명이, 내야에선 5명이 깃발을 흔들었다. 

 

 

대형 깃발 퍼포먼스는 투수 교체와 이닝 교체 때 경기장의 흥을 돋우기 위해 2분간 벌어진다.

가을야구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이다.

김씨는 이날 넥센 쪽 외야를 맡았다.

외야에서 깃발을 휘날리면 내야는 여기에 방향을 맞춰 깃발을 돌린다. 김씨의 역할이 중요한 이유다.

뚫어져라 경기장을 바라보던 김씨는 전광판에 빨간색 불이 2개가 들어오자 동료들에게도 준비를 하라고 손짓했다.

드디어 3아웃 공수교대. 김씨는 바닥에 놓여 있는 4m가 넘는 깃발을 서둘러 들고 펴서 리본모양으로 휘저었다.

경기 내내 흔들면 팔 상태가 어떨까. 김씨는 “요령있게 하면 손이 저리지 않는다”며 “깃발을 내려 저을 때 힘을 주고 올릴 때 힘을 빼야 깃발이 쫙 펼쳐진다.

손으로 돌리기보다 몸의 반동을 이용해야 한다”고 했다. 

 

 

 

17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넥센과 엘지(LG)의 준플레이오프 4차전. 엘지쪽 내야에서 5개의 대형 깃발이 휘날리고 있다.사진 권승록 기자 rock@hani.co.kr
17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넥센과 엘지(LG)의 준플레이오프 4차전. 엘지쪽 내야에서 5개의 대형 깃발이 휘날리고 있다.사진 권승록 기자 [email protected]

김씨는 엘지팬이지만 생계 때문에 넥센 깃발을 들었다. 지금껏 해보지 않은 아르바이트가 없다.  

술집과 고깃집, 횟집 서빙을 비롯해 전단지 배포, 편의점, 당구장, 피시(PC)방 등 대학 시절 내내 닥치는 대로 아르바이트를 했다.

밀린 월세와 학자금 대출 때문에 학내 조교도 겸하고 있다.

중간고사가 이번주까지 계속되지만 깃발을 놓을 수 없는 이유다.

김씨는 “남들은 야구도 보고 돈도 벌고 1석2조라고 하는데 스펙이 급한 내겐 야구가 중요하지 않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이어 “깃발 때문에 관람에 방해가 된다며 욕하시는 분들도 있다”고 고충을 털어놨다. 

 

김씨를 포함해 이날 넥센 쪽에서 깃발을 흔든 15명은 모두 아르바이트로 고용됐다.  

정규시즌 땐 넥센과 계약한 이벤트 업체 직원들이 응원을 전담하지만 포스트시즌엔 여력이 부족하다.

이 때문에 이 업체는 또다른 인력업체와 계약해 사람을 구한다.

주로 20대 남성들이다.

김씨 또한 이 인력업체와 계약했다.

근로계약서는 쓰지 않았다.

김씨가 준플레이오프 나흘 동안 매일 9시간씩 일해 받은 일당은 5만원이다. 시급 5555원. 2016년 최저임금 6030원에도 미치지 못한다.

 

 

 

17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넥센과 엘지(LG)의 준플레이오프 4차전. 엘지쪽 외야에서 10개의 대형 깃발이 휘날리고 있다.사진 권승록 기자 rock@hani.co.kr
17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넥센과 엘지(LG)의 준플레이오프 4차전. 엘지쪽 외야에서 10개의 대형 깃발이 휘날리고 있다.사진 권승록 기자 [email protected]
17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넥센과 엘지(LG)의 준플레이오프 4차전. 넥센쪽 외야에서 10개의 대형 깃발이 휘날리고 있다.사진 권승록 기자 rock@hani.co.kr
17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넥센과 엘지(LG)의 준플레이오프 4차전. 넥센쪽 외야에서 10개의 대형 깃발이 휘날리고 있다.사진 권승록 기자 [email protected]

넥센 쪽은 “아르바이트생들이 오후 3시에 나오고 넥센은 6만원을 지급해 최저임금은 넘는 줄 알았는데 인력업체에서 1만원을 제하고 5만원을 지급하는지는 알지 못했다”고 했다. 인력업체 쪽은 “최저임금을 지키지 못했던 부분이 있었다”며 잘못을 시인했다. 이날 넥센은 기자가 취재에 들어가자 8회초부터 대형 깃발 응원을 중단했다. 넥센 관계자는 “계속 일을 하면 오늘도 최저임금을 위반하게 될 것 같아 중도에 멈췄다”고 했다. 

 

 

 

17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넥센과 엘지(LG)의 준플레이오프 4차전. 넥센쪽 외야에서 넥센에서 제공한 보라색 티셔츠를 입은 대형 기수 아르바이트생이 경기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 그의 발 밑엔 넥센 응원 로고가 적힌 대형 깃발이 놓여있다. 사진 권승록 기자 rock@hani.co.kr
17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넥센과 엘지(LG)의 준플레이오프 4차전. 넥센쪽 외야에서 넥센에서 제공한 보라색 티셔츠를 입은 대형 기수 아르바이트생이 경기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 그의 발 밑엔 넥센 응원 로고가 적힌 대형 깃발이 놓여있다. 사진 권승록 기자 [email protected]

사정은 엘지 쪽이 조금 나은 편이었다. 인하대 수학과를 졸업한 지 2년, 스포츠마케터를 꿈꾸며 취업 원서를 넣고 있지만 번번이 서류에서 탈락하고 있다는 이아무개(30)씨는 엘지 쪽 내야에서 깃발을 흔들었다. 야구를 좋아해 가을야구도 보고 돈도 벌 수 있어 올해 포스트시즌에 모두 나와 깃발을 들었다. 하지만 당장은 취업이 더 급하다고 했다. 부모님께 손을 벌릴 수 있는 나이도 지났다는 것이다. 작은 돈도 소중하게 느껴지는 이유다. 엘지 쪽은 이들에게 시급 6030원을 지급한다고 밝혔다. 엘지 역시 근로계약서는 작성하지 않았다. 이날 엘지와 넥센의 대형 깃발 아르바이트생 35명이 경기 내내 휘저은 깃발 횟수는 총 2100여번에 달했다. 아르바이트생 대부분이 20대에서 30대 초반의 취업준비생이었다. 

 

 

가을야구 축제 뒤편에는 묵묵히 야구장 쓰레기를 치우는 50~60대로 구성된 57명의 비정규직 환경미화원(“징그럽게 어질러 놨네…그래도 일감 생겨 좋네요”)이 있다. 그리고 축제 안쪽에는 20~30대가 전부인 비정규직 대형 기수 아르바이트생 35명이 있다.

 

 

 

 

권승록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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